기사 원문 : https://www.elec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5889

V2G 상용화, “기술보다 제도가 문제”
수익 구조·요금제 설계가 핵심 관건
파편화된 이해관계자 조율이 숙제
“정권 바뀌어도 방향 이어져야”

10일 열린 2026 EV 충전인프라 심포지엄에서 V2G 상용화 전략과 장애극복을 주제로 (왼쪽부터) 배성우 한양대 교수(좌장), 이재조 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한세경 경북대 교수, 박창운 전기연구원 선임연구원, 조성수 한전 전력연구원 수석연구원, 김진호 GIST 교수가 패널 토론을 하고 있다. []
10일 열린 2026 EV 충전인프라 심포지엄에서 V2G 상용화 전략과 장애극복을 주제로 (왼쪽부터) 배성우 한양대 교수(좌장), 이재조 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한세경 경북대 교수, 박창운 전기연구원 선임연구원, 조성수 한전 전력연구원 수석연구원, 김진호 GIST 교수가 패널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오철 기자]

전기차 배터리에 남은 전기를 전력망에 되팔 수 있다면? 단순한 미래 얘기가 아니다. 이른바 V2G(Vehicle to Grid·전기차-전력망 연계) 기술을 둘러싼 논의가 이미 상당히 구체화됐다. 지난 10일 열린 ‘2026 EV 충전인프라 심포지엄’ 패널토론에서는 배성우 한양대 교수(좌장)를 비롯한 산학연 전문가 5명이 모여 기술의 현주소와 걸림돌, 그리고 현실적인 해법을 놓고 깊이 있는 토론을 벌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문가들은 “기술은 달리고 있는데, 제도는 아직 출발선에 있다”라고 입을 모았다.

배터리 망가질까? ‘No, 매일 맥주 한 모금 마시는 것과 비슷’

V2G를 꺼리는 전기차 소유자들이 가장 많이 드는 이유가 있다.

“내 차 배터리 망가지는 거 아냐?”

한세경 경북대 교수는 이 질문에 예상 밖의 답을 내놨다. “배터리 수명에 대한 우려가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습니다. 맥주를 반주로 하루에 반 잔씩 마시는 게 어떠냐는 질문과 비슷해요. 원론적으로는 우려스럽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잖아요.”

이날 한 교수는 전기차 1137대를 375일 동안 추적한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핵심은 충전 습관이다. 많이 달릴수록 배터리가 나빠진다는 게 사실일까? 그의 답은 “아니다”였다. 주행거리보다 높은 SoC를 오래 유지하는 ‘충전 습관’이 배터리 수명에 3~10배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게 연구 결론이다. 특히 100% 가득 충전한 뒤 장시간 방치하는 습관이 배터리를 가장 빠르게 노화시켰다.

V2G 완속 충방전이 배터리에 주는 영향은 기존 연구들을 봐도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게 알려진 사실이라고 한 교수는 설명했다. 오히려 V2G 제어를 통해 높은 충전 상태(SOC)를 피하도록 유도하면, 배터리 수명을 더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역발상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가 강조한 건 ‘막연한 공포’를 걷어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정확하게 계량화된 데이터를 갖고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게 의미있어요. 그냥 ‘괜찮으니까 해’라고 하면 소비자도 받아들이기 어렵죠.”

기술적 허들은 뭔가…“ESS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V2G 기술 자체가 어렵냐는 문제. 전문가들의 평가는 의외로 낙관적이었다.

조성수 한국전력공사 전력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계통 연계 관점에서 기술적 허들은 없어 보인다”고 잘라 말했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인버터와 V2G 인버터가 기능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 다만 역송(전기를 전력망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 기능을 전기차에서 구현할지, 충전기에서 담당할지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재조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선행 과제를 하나 짚었다. V2G가 작동하려면 사전에 PKI(공개키기반구조) 인프라가 구축되고 PnC(Plug and Charge, 꽂으면 자동 인증·결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QR코드를 찍거나 카드를 태그하는 방식으로는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는 V2G 서비스를 원활히 운영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박창운 한국전기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인프라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지적했다. 그는 “V2G는 장시간 차가 충전기에 묶여 있어야 하는 시스템”이라며 “지금처럼 기존 건물의 주차면 2~5%에만 충전기를 설치하는 정도로는 어렵고 대규모 충전 설비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짜 문제는 제도…“돈이 되는 구조가 없다”

기술 다음으로 긴 시간이 할애된 건 제도 이야기였다.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짚은 핵심은 단순했다. V2G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 자체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김진호 GIST 교수는 시장 구조 문제를 먼저 꺼냈다. 전기차가 전력 시장에 참여하려 해도 요금제도 없고, 참여 기준도 불명확하다. 법적 근거는 있지만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디테일이 없다 보니, 기업이 투자할 이유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소매 요금제부터 설계해 V2G가 실제로 돈이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게 먼저라고 했다.

이어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전력회사 PG&E의 파일럿 요금제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제시했다. V2G에 참여하는 소비자가 기존 요금제보다 더 많이 내는 일이 없도록 설계해 참여 장벽을 낮추는 방식이다.

조성수 수석연구원은 한전 입장에서의 현실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배전계통에 V2G를 활용했을 때 한전이 그 비용을 지불해줄 수 있는 구조와 체계가 아직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며 시장을 만들어 운영하고, 그 비용을 지불하는 기능이 한전에 갖춰져야 실질적인 역할이 생긴다는 얘기다.

이재조 박사는 소비자 유인 방식도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하루 50km 출퇴근하는 전기차 사용자가 V2G에 가입해서 하루 10시간씩 연결해 놓으면, 1년 출퇴근 거리만큼의 전기를 보상(무료 제공)해 준다면 어떨까요. 한 달에 5만원, 1년에 60만원 수준이면 참여가 늘어날 겁니다.” 어렵게 설명하지 말고, 일반 소비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마케팅과 홍보가 필요하다는 강조도 곁들였다.

5년 안에 될까…“정책 의지가 변수”

마지막 질문은 가장 현실적이었다. 향후 5년 안에 국내 V2G 상용화가 가능하냐는 것.

김진호 교수는 “5년 이내 유의미한 상용화는 가능하다”며 “단, 조건이 있다. 시장이 자연스럽게 생기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가담해야 한다. 정책으로 시장을 만들고 적절한 요금제를 갖춰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세경 교수는 기술의 문제라기보다 정책과 제도의 문제라며 정책 결정자의 의지를 핵심 변수로 꼽았다. 그는 “기후부에서 강하게 드라이브하고 있는 지금 국면은 긍정적”이라며 “다만 이게 일시적 현상으로 끝날까 봐 걱정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 방향이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조성수 수석연구원은 토론 말미에 흥미로운 그림을 하나 그렸다. 도심일수록 분산자원이 효과적인데, 도심 운전자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주차 문제다. V2G가 해결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차하는 동안 V2G로 번 돈이 주차비보다 크다면, 주차하고 오히려 돈을 받아가는 세상이 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시대가 빨리 왔으면 합니다.”

전기신문 | 2026.03.11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