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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저가 스펙이 충전기 교체 전쟁 불러
10년째 개선 없는 건설사 시방서, 피해는 입주민 몫
관리 부담 떠안은 관리소, 새 CPO 달콤한 제안 거절 힘들어
보조금 인프라, 교묘한 편법 앞에 속수무책

바꾼다는 의혹이 유튜브와 언론을 통해 확산되면서 관리사무소로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취재를 통해 드러난 문제의 출발점은 그보다 훨씬 앞에 있었다. 교체 영업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준공 승인만을 목적으로 구형 규격의 저가 충전기를 숫자만 채워 넣은 건설사였다. 리베이트는 결과일 뿐, 구조적 원인은 따로 있다는 것이 업계 전반의 지적이다.

◆ 신축 아파트에 들어선 ‘2016년형’ 충전기

현행법은 신축 건물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할 충전기의 ‘수량’만 정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나 통신 요건 같은 세부 기능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이 없다. 건설사는 친환경자동차법이 정한 의무 설치 비율(5%)만 채우면 그만이다. 준공 이후의 운영 효율이나 입주민의 편의성은 건설사의 고려 대상 밖이다.

본지가 입수한 전기차 충전기 설비 시방 제안서를 분석하면 이 공백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확인된다. 신축 현장에 설치되는 충전기 상당수가 2016년 규격 수준에 머물러 있다. KC 인증을 받은 제품이라 해도 성능과 품질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국가 표준은 이미 바뀌었는데 건설사 시방서는 원가 절감에 맞춰 10년 전에 멈춰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건설사와 일부 충전기 제조사 간의 공급 구조가 ‘카르텔’처럼고착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완속충전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는 방식과 출력 두 가지다. 국가기술표준원은 이미 2017년에 케이블이 충전기에 내장된 ‘C타입’으로 국내 충전 방식을 사실상 단일화했다. 그럼에도 건설사들이 단가를 낮추기 위해 케이블 분리형인 ‘B타입’을 고집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 경우 차주는 15만원 상당의 충전 케이블을 직접 구입해 트렁크에 항상 싣고 다녀야 한다. 국가 표준이 바뀐 지 10년이 지났지만 입주민은 여전히 구형 방식의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셈이다. 출력도 문제다. 완속 충전기 표준 출력은 7kW이지만, 건설사들은 의무 비율을 채우는 데만 급급해 그보다 낮은 출력의 3kW 제품을 설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급속충전기 상황도 다르지 않다. 겉으로는 50kW급이지만 출력 전압 범위가 450V에 묶인 구형 규격이 신축 단지에 여전히 들어서고 있다. 최신 충전기가 DC 100~1000V까지 수용하는 반면, 이런 기기는 아이오닉5·6, EV6 등 이미 대중화된 800V 고전압 전기차의 빠른 충전 성능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단일 표준으로 자리 잡은 DC콤보1 방식 대신, 사실상 단종 수순에 들어간 AC3상·차데모 커넥터가 포함된 3모드 충전기가 아직도 설치되는 경우도 많다. 국내 전기차 가운데 차데모·AC3상 차량 비중은 약 2%에 불과하다. 98%의 전기차가 쓰지 못하는 커넥터가 의무 설치 비율을 채우고 카르텔을 견고하게 하는 데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건설사가 아낀 원가는 입주민의 불편과 불필요한 추가 비용으로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는 셈이다.

◆ 리베이트 의혹, 관리소만의 잘못인가

이번 논란의 핵심어로 떠오른 ’리베이트‘의 실체는 단순하지 않다. 영업 현장에서 충전기 교체 계약을 유도하며 소화기나 방범 카메라 같은 물품을 제공하거나 관리소 업무에 필요한 비품을 지원하는 방식은 자동차 판매나 보험 영업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판촉 행위다.

문제는 그 선을 넘어 계약 담당자에게 금품이 오가는 경우다. 이는 명백한 불법이며 확인된 사례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업계는 지적한다.

다만 이번 논란이 확산되면서 모든 충전기 교체 계약이 부정의 산물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형성된 점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주택관리업계 관계자는 “잘못한 부분에 대한 책임은 당연한 것이지만, 일부 사례가 전체인 것처럼 보도되면서 정당하게 업무를 수행해온 관리소장들까지 모두 의심받는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관리사무소가 교체 계약에 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배경도 있다. 충전기가 고장 나면 1차 민원 창구는 관리소다. 충전 전문 인력이 없는 관리소로서는 즉각 대응이 쉽지 않고, 수리비는 아파트 장기수선충당금에서 지출된다. 전문 운영사(CPO)가 실시간 원격 모니터링으로 고장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과 달리, 원격 관제 기능이 없는 로컬형 기기를 관리소가 운영할 경우 고장 인지부터 대응까지 모든 단계가 늦어진다.

충전기 문제를 둘러싼 입주민 갈등도 관리소 몫으로 떨어진다. 전기차 입주민은 충전기 품질과 속도를 따지고, 내연기관 입주민은 공동 관리비로 전기차 전용 시설을 수리하는 것에 불만을 토로한다. 두 ‘갑(甲)’ 사이에서 ‘을(乙)’의 처지가 된 관리소로서는, CPO가 내미는 ‘무상 교체·24시간 민원 전담·별도 운영 부담 없음’이라는 조건이 사실상 유일한 출구처럼 보일 수 있다.

◆ 보조금 의무기간 피하는 ‘지상 이전’ 꼼수

또 눈여겨봐야 할 것은 보조금이 투입된 기존 충전기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방식이 교묘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보조금을 받아 설치된 충전기는 5년의 의무 운영 기간이 있어 철거하면 보조금 환수 대상이 된다. 이 기간이 지난 뒤 아파트 측의 요청이나 계약 만료로 교체되는 것은 적법한 절차다. 실제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노후 충전기를 스마트 제어 충전기로 교체하는 사업에 2025년 300억원을, 2026년 약 225억원(추정)을 편성했다.

문제는 의무 기간 안에 이뤄지는 우회적 교체다. 충전 업계 관계자는 “보조금 의무 기간 내에 대놓고 뜯어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도 편법이 동원된다고 설명했다. 화재 우려로 인한 지상 이전 요구는 이해할 수 있는 민원이다.

문제는 일부 영업사가 이를 기존 CPO를 밀어내고 보조금을 중복으로 노리는 기회로 악용한다는 점이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이전 비용을 수익 구조상 감당하기 어려운 기존 CPO가 난색을 보이는 사이, 새로운 영업사가 “지상에 설치해드릴 테니 지하 기존 기기는 끄거나 일반 주차 공간으로 전환하면 된다”고 제안하는 방식이다.

물리적 철거가 아닌 만큼 보조금 환수는 피하면서도 사실상 기존 CPO의 사업권을 빼앗는 구조다. 멀쩡히 작동하는 충전 설비가 방치되고, 지상에는 새 기기가 들어서면서 세금으로 설치한 인프라가 이중으로 낭비되는 셈이다. 이 같은 편법은 현행 규정상 제재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 수량만 채우면 그만… 신축 충전기 규정 손봐야

이번 논란과 관련해 본지에 제보를 보내온 업계 관계자는 “근본적인 원인은 신축 건물에 수량 기준만 있고 운영과 관제 기능에 대한 요건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며 “건설사가 저가 기기를 심을 수 있는 제도적 공백이 계속되는 한 교체 영업을 위한 빌미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OCPP 기반 통신 요건 명시, C타입 커플러 적용, 현행 국가 표준에 부합하는 충전 방식 요건화 등을 현실적인 개선 방향으로 제시했다.

부정 행위에 대한 제도적 압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기업의 불법·불공정 행위에 대한 신고 포상금을 상한 없이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20%인 과징금 부과율을 30%로 올리고 그에 비례해 포상금도 높여, 부정 행위를 신고하면 수백억 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충전기 교체 과정에서 불거진 금품 수수 의혹이 이 같은 흐름과 맞물릴 경우 업계 전반에 상당한 파장이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충전 업계 관계자는 “리베이트 논란이 불거진 이후 추가 설치를 진행하던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들이 불필요한 구설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계약을 미루거나 중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한창 속도를 내야 하는 완속 충전기 보급이 사실상 멈춰선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전기차 보급 속도는 계속 빨라지는데 충전 인프라가 이 논란에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된다”며 “부정 행위에 대한 처벌과 동시에 건설사 저가 스펙이라는 구조적 원인도 반드시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