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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100이 경쟁력 가르는 시대…반도체·AI ‘세계 공급망 재편’서 韓 고립 위기
가격 왜곡·인프라 부족에 발목…E 삼중고 해소 없인 첨단 산업 유지 불가능
IEEFA “원전·재생E 조화, 전력시장 개혁·민간투자 활성화로 돌파구 열어야”

<글로벌 대비 현저히 낮은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2023년 기준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9.64%로, 세계 평균(30.25%)과 OECD 평균(33.49%)은 물론 아시아 평균(26.73%)에도 크게 뒤처지고 있다. IEEFA는 한국은 석탄과 가스 비중이 여전히 높아 에너지 전환 속도가 더디다고 지적했다.[자료=IEEFA, KEPCO, Ember]
<글로벌 대비 현저히 낮은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2023년 기준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9.64%로, 세계 평균(30.25%)과 OECD 평균(33.49%)은 물론 아시아 평균(26.73%)에도 크게 뒤처지고 있다. IEEFA는 한국은 석탄과 가스 비중이 여전히 높아 에너지 전환 속도가 더디다고 지적했다.[자료=IEEFA, KEPCO, Ember]

반도체는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하는 확고한 주력 산업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도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업을 아우르는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기반으로 메모리 시장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삼성과 SK 등 주요 기업들은 AI 시대를 맞아 대규모 데이터센터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막대한 전력을 요구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한국은 ‘에너지’라는 근본적인 시험대에 올라 있다.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공급 없이는 첨단 산업 경쟁력조차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 에너지 위기, 산업 경쟁력을 흔들다

국제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글로벌 평균에 크게 못 미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반도체와 AI 산업의 성장 기반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급증하는 산업계 전력 수요를 탄소중립 요구에 맞춰 충족하지 못할 경우,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이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2023년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9.64%에 불과했다.

세계 평균(30.25%), 아시아 평균(26.73%), OECD 평균(33.49%) 모두를 크게 밑돈다.

이는 에너지 전환 속도의 심각한 정체를 보여준다.

특히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선언하고 공급망 전반에 이를 요구하면서 재생에너지 확보 여부는 수출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RE100과 산업 경쟁력… ‘에너지’가 승패를 가른다

반도체는 한국의 대표 수출 품목으로,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기차, 스마트폰 등 거의 모든 첨단 산업에 필수적으로 투입된다.

특히 AI 시대를 주도하는 고성능 서버와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는 대표적 산업군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전력이 아닌 ‘깨끗한 전기’, 즉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이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기업들은 이미 RE100 이행 여부를 협력사 선정의 필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인텔, TSMC, 글로벌파운드리 같은 반도체 제조사들도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투자와 생산 거점 선정의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런 흐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IEEFA는 한국이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을 지금보다 수배 이상 늘리지 않는 한, 산업계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충족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는 발전소 추가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전력계통 보강, 송배전망 확충, 에너지저장장치(ESS) 확대 등 에너지 인프라 전반의 혁신이 병행돼야 가능한 과제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새 반도체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RE100 충족 여부가 투자 인센티브 협상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사례는 이러한 글로벌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내에서도 동일한 조건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생산 거점 해외 이전은 현실이 될 수 있다.

▶한국, ‘전력 삼중고’의 덫에 걸리다

국제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한국의 에너지 구조를 전력 삼중고(Power Trilemma)라는 날카로운 표현으로 정의했다.

에너지 안보, 경제적 경쟁력,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세 가지 목표가 서로 충돌하면서, 그 어느 하나도 온전히 달성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진단이다.

한국은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값싼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를 높이는 한편, 정치적 부담 속에 전력요금 인상을 억제해왔다.

이로 인해 한국전력공사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재정 여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급격히 벌어진 도매가격과 판매가격 격차. 한국전력의 부채 누적과 전력시장 왜곡을 초래한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제공=KESIS, KEPCO]
급격히 벌어진 도매가격과 판매가격 격차. 한국전력의 부채 누적과 전력시장 왜곡을 초래한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제공=KESIS, KEPCO]

가격 구조의 왜곡은 시장의 활력을 더욱 저해하고 있다.

도매 전력가격이 치솟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적 결정으로 판매가격은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되면서 가격 격차가 수십 원 이상 벌어졌다.

IEEFA는 이로 인해 한국전력의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재생에너지 투자가 위축돼, 전력시장 전체의 구조 전환을 가로막는 악순환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도 좁다.

직접 구매계약(PPA) 시장은 활성화되지 않았으며, 대규모 풍력과 태양광 프로젝트는 인허가 지연과 주민 수용성 문제로 잇따라 제동이 걸린 상태다. 기업들이 친환경 전력 조달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왜곡된 시장 환경 속에서는 좀처럼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

이와 달리 일본과 대만은 정책 일관성과 과감한 지원을 통해 재생에너지 확대와 첨단 산업 육성을 긴밀히 연계하는 전략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은 원전 재가동과 재생에너지 투자를 병행하며 전력믹스 다변화에 나섰고, 대만은 법제화와 해상풍력 대규모 개발을 통해 글로벌 기업 유치 경쟁에서 한발 앞서가고 있다.

한국의 전력 시장은 지금, 선택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기로에 서 있다. 에너지 삼중고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첨단 산업 경쟁력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산업 경쟁력 지키려면 ‘에너지 대전환’ 필수

한국이 이 흐름에 뒤처질 경우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단순한 친환경 정책의 문제가 아닌 산업 생존의 문제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전력 사용처의 청정성을 넘어,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투자 판단의 중요한 척도로 삼고 있다.

IEEFA는 한국이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를 과감히 높이고 실현 가능한 정책과 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생에너지 용량 확대는 물론, 대규모 프로젝트 인허가 간소화, 송배전망 확충, 전력 인프라 혁신이 시급하다.

또 전력요금 체계 개편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에너지 시장에 제대로 된 가격 신호가 작동하지 않는 한, 한국전력의 재정 건전성 확보도, 민간 투자 확대도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들이 필요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민간 발전사업자 참여 확대와 전력 구매계약(PPA) 활성화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이 핵심이다.

정권 교체나 정책 환경 변화에도 에너지 전환 로드맵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정부, 산업계, 지자체,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협치 기반을 통해 중장기 전략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 “이미 경고등은 켜졌다…더 이상 선택을 미뤄선 안 된다”

AI, 반도체, 데이터센터, 전기차. 모든 첨단 산업은 이제 얼마나 청정하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확보하는지가 미래를 좌우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를 기준으로 공급망 재편에 나섰고, 한국은 그 갈림길에 서 있다.

김채원 IEEFA 한국담당 수석연구원은 “한국이 여전히 화석연료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에너지 전환을 지연시킨다면, 또 다른 지정학적 위기나 에너지 가격 급등 국면에서 산업 기반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조화로운 병행, 전력시장 개혁, 민간 투자 확대와 전력요금 정상화 없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원은 또 “이미 경고등은 켜졌다. 한국은 더 이상 선택을 미룰 여유가 없다”며 “산업 경쟁력과 국가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에너지 대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AI와 반도체 산업의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설비를 2030년까지 3배로 확대하면 충분히 수요를 충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래프는 재생에너지, 원전, 석탄, 가스 등 에너지원별 공급 구조와 전력 수요(Demand) 추이를 보여준다.[제공=IEEFA]
한국이 AI와 반도체 산업의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설비를 2030년까지 3배로 확대하면 충분히 수요를 충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래프는 재생에너지, 원전, 석탄, 가스 등 에너지원별 공급 구조와 전력 수요(Demand) 추이를 보여준다.[제공=IEEFA]

전기신문 | 2025.05.09 보도